추석·설날 차례상 차리는 법: 성균관 표준안과 미국에서의 간소한 제사 예법
명절이 다가오면 가장 먼저 걱정되는 것이 바로 차례상 차리기입니다. 지역마다, 집안마다 가례(家禮)가 달라 정답을 찾기 어렵고, 특히 타지나 해외에 거주하는 분들에게는 재료 준비부터가 큰 일이죠. 오늘은 성균관에서 발표한 간소한 차례상 표준안과 함께, 미국 등 해외 거주자들도 참고할 수 있는 현대적인 명절 예법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제주도 벌초의 기억
벌초(伐草)는 한자 뜻을 그대로 풀이하면, ‘풀을 베다’입니다. 한국의 유교적 전통에서 벌초는 단순히 풀을 베어 정리하는 행위 뿐만 아니라 조상의 묘를 깨끗하게 관리하는 것이 후손의 도리이자 효성의 표현이라는 의미를 함께 포함합니다.
한국의 대다수 지역이 그렇듯, 저의 고향 제주도에서도 설과 추석은 온 집안 식구들이 모이는 가장 큰 행사였습니다. 특히 추석 보름 전 벌초를 아주 큰 집안 행사로 여겨서, 타지에 나가 사는 제주도 남성이라도 가족 벌초 (성묘)에 참석하기 위해 고향에 내려오기도 합니다.
본인이 어렸을 때는 벌초를 가족 벌초와 모둠 벌초를 따로 토요일과 일요일, 그다음 주 토요일까지 2주 동안 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여기 저기 흩어져 있던 묘들을 가족 공동 묘지로 모으는 이장 절차를 통해서 그 횟수가 줄어들기는 했지만, 새벽 일찍부터 점심 먹고 나서 오후까지 무더운 여름 주말을 밖에서 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제주도에는 벌초를 위한 ‘벌초 방학‘이 따로 있었습니다.
추석 차례
조상을 모신다는 후손들의 정성은 이해하지만, 벌초, 차례상 음식 준비, 추석 차례까지 지내고, 여기에 구정, 제사들 (제주도의 우리 집은 아직까지 자정에 제사를 지냅니다)까지 바쁜 일상을 보내는 현대인들에게는 너무 힘들고 큰일입니다.
추석 전날, 추석 차례 (茶禮)를 지낼 큰 집에 모여서, 차례상에 올릴 각종 ‘전’들을 부치기도 하고 다양한 음식들을 준비합니다. 추석 당일, 새벽부터 당일에 준비해야 하는 음식들을 또 준비합니다. 아침 일찍부터 집안의 이 집 저 집을 돌아다니며 차례를 지내고, 아침과 점심 식사까지 하고 나서 끝이 납니다. 제주도 출신이라면 ‘문전제(門前祭)’라고 아실겁니다. 집안에 따라서 대문(글문)을 지키는 ‘문전신’에게도 간단히 제사상을 함께 차리기도 합니다.
홍동백서, 조율이시는 없다?
전날, 당일에 준비한 음식들을 추석 차례상을 올리는 것을 ‘진설한다’라고 합니다. 어릴 때는 어른들이 진설하는 것을 잘 보고 배우라며 차례상 옆에 앉혀두기도 하고, 차례 예법에 대한 책자를 가져와서 “홍동백서 (紅東白西): 붉은 과일은 동쪽에 흰 과일은 서쪽에”, “조율이시 (棗栗梨枾): 대추, 밤, 배, 감” , “어동육서 (魚東肉西): 생선은 동쪽에서 육고기는 서쪽에”, 등등 각종 진설 방법을 암기(?)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에 따르면, 이러한 진설 규칙은 예법에 관한 옛 문헌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표현이라고 합니다. 즉, 반드시 지켜야 할 절대적인 법도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성균관 차례상 표준안
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에서는 차례가 조상을 모시는 후손들의 정성을 표하는 의식인데, 이로 인해 가족들이 고통받거나 가족 사이에 불화가 생긴다는 것을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라며 간소화 “차례상 표준안“을 발표했습니다.
- 기본 음식(6가지): 송편(설날은 떡국), 나물, 구이(적), 김치, 과일, 술.
- 추가 가능: 육류, 생선, 떡 등을 가족 합의에 따라 추가.
- 가장 반가운 점: 전(煎)을 포함해 기름에 튀기거나 지진 음식을 차리지 않아도 됩니다.
조선시대 예학 사상가인 사계 김장생이 쓴 [사계전서]의 ‘의례문해’에서는 “기름진 음식을 써서 제사 지내는 것은 예가 아니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를 힘들게 했던 ‘전 부치기’가 사실은 필수 예법이 아니었던 셈입니다.


미국 생활 속의 제사와 차례: “정성이 곧 예법입니다”
미국에 거주하는 한인 가족들도 명절이면 제사나 차례를 고민하시곤 합니다. 한국과 재료 수급 상황이 다르고 맞벌이가 흔한 미국 생활에서 한국과 똑같은 상차림을 고수하기란 쉽지 않죠.
- 미국 마트 재료 활용: 코스트코나 트레이더 조, 아마존에서 구할 수 있는 신선한 현지 식재료로 정성껏 음식을 준비하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 온라인 한인마트 활용: 주변에 H-mart나 다른 큰 한인 마트가 있다면, 쉽게 한식 재료를 구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울타리몰과 같은 온라인 한인마트에서도 한식 재료를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 방식의 유연함: 집안마다 방식은 다르겠지만, 성균관 표준안처럼 ‘가족 간의 합의’를 통해 메뉴를 정해보세요. 꼭 한국 식재료가 아니더라도 조상을 기리는 마음이 담긴다면 그것이 바로 현대적인 차례의 의미일 것입니다.
명절이 지나고 나면 뉴스에는 항상 ‘명절 증후군’이나 ‘가족 갈등’ 소식이 들려옵니다. 하지만 조상을 모시는 의식이 가족의 불화로 이어진다면 그것은 조상님들도 원치 않으실 일입니다.
이번 추석과 설날에는 복잡한 형식에 얽매이기보다, 간소화된 상차림으로 가족들이 한데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데 집중해 보는 건 어떨까요? 화려한 상차림보다 중요한 것은 가족 간의 화목과 진심 어린 마음가짐입니다.





